12일 간 베트남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생애 첫 해외여행임에도 준비라고는 론리플래닛과 배낭만 산것이 전부라 무진장 고생했네요. 몸고생, 돈고생이야 물론이고 마음고생도 좀 했습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사회주의의 적나라한 현장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거든요.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한국에서 3년간 일하다가 돌아가는 베트남인을 만났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친해지자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어요. " 호치민, 어떻게 생각해요?" , "...." , "대단한 사람아닌 가요?", 그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 그가 아니었다면 베트남은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됐을 거에요." 잠시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잔혹한 스탈린도 아니고, 문혁을 일으킨 마오쩌둥도 아니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조국독립에 온 몸을 바쳤다는 그를 싫어하는 베트남인을 여행초기에 만난겁니다.
그 후로도 호치민을 싫어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습니다. 대략 50:50 이었어요. 호치민에 대한 호불호는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주로 남부지역을 다녔는데 그 곳에서 호치민의 인기는 바닥이었습니다. 특히 호시민시에서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기껏해야 세네명에게 말을 건게 전부지만요.
달 랏에서 그를 싫어한다는 한 늙은 모토바이크 기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은 비행기에서 만났던 베트남인과 비슷합니다. 호치민의 북베트남이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모두가 못 살게 되었다는 거지요. 반문하고 싶었지만 더 깊이 묻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러 온거니까요. 대신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아직 베트남은 멀었답니다. "왜요?, 도이모이로 개혁개방을 해서 외국인도 들어오고 인터넷도 사용하잖아요.", "그거 알아? 우린, 새장안에 갖힌 새야.", "정부는 우릴 감시하고 있어. 자유롭지 못해. 자유? 정치적인 자유는 없어. 공산당과 다른 의사를 표명하면 잡혀 간다고." 두번째 충격입니다. 공산주의, 비밀경찰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니 약간 충격에 휩싸입니다. 과연 이게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의 실체일까요. 아니면 이들만 기형적인 것일까요.
베트남에서 공산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유는 무한대로 허용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가 몸을 파는 것 마저도 국가는 방조하고 있습니다. 달러를 벌면 정부에게 도움이 되니까요. 정부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료들은 부패했습니다. 제가 미니버스를 타고 부온마톱으로 가는 길에 실제로 버스기사가 공안의 단속에 걸리자 뇌물을 쥐어주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인민은 일당독재인 공산당을 비판하지 못합니다. 모든 미디어는 정부의 목소리만 대변하고 있습니다. 국영방송들은 뉴스보다는 드라마, 쇼프로그램을 틀며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제가 베트남에 있던 기간 중에 베트남이 스즈키컵에서 우승했습니다. 베트남 전역이 들썩이고 티비는 온종일 같은 경기를 반복해서 틀어주었죠. 그 때 저는 한적한 항구도시인 뀌뇽에 있었습니다. 평소같으면 7시 이후부터는 거리가 한산한데 그 날은 10시가 넘도록 도로가 오토바이로 가득 찾죠. 그들은 자신의 몸에 국기를 묶고 거리를 질주했습니다. 저와 같은 숙소에 있던 한 외국인은 이를 보고 지금 이곳에는 자유가 넘쳐난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앞서 모토바이크기사가 말한 것 처럼 이는 새장속의 자유일 뿐인거지요. 정부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한도까지만 인민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거에요.
사회주의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고 말하고, 국가이름에도 이를 적시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인가요? 젊은이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부가 가르치는 역사만 배우는 상황에서 베트남의 민주주의는 성장할 수 있을까요? 거리에 널린 낡은 호치민 포스터만큼 베트남의 공산당은 낡았고, 이제 베트남에는 SALE이란 화려한 플랜카드만 날리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가 아니라는 말,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대안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걸까요.
2009. 1. 4.
베트남에서 경험한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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