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of easy cash: banks must take losses
Easy cash(간편대출?)의 종언: 은행들은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By Charles Wyplosz
Published: December 20 2007 18:58 Last updated: December 20 2007 18:58
The combined central bank injection of liquidity last week was impressive. Still, more than five months after the interbank market froze, banks’ thirst for cash seems unquenchable. The central banks have done everything they can to keep financial markets orderly. They took the risk of feeding the moral hazard beast and what did they achieve? So far they have avoided the much-feared “Big Crunch”, but the end of the tunnel is not yet in sight. The time has come to ask the harder question: do commercial banks get it?
지난주에 이뤄진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은 인상적이었다. 다섯 달이 넘도록 은행간 시장은 얼어붙어 있어서 여전히 은행들은 자금에 목말라 있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그들은 모럴해저드라는 괴수에게 먹이를 주는 위험까지 부담했다. 그런데 얻은 것은 무엇인가? 여태까지 그들은 거대 위기라는 가장 무서운 문제만 피했을 뿐, 사태의 종착역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냉철한 질문을 해야할 때이다 : 상업은행이 유동성 자금을 받긴 한 건가?
The big commercial banks hold mountains of cash, probably because they still have mountains of sickly off-balance-sheet liabilities that they are unwilling to acknowledge. Or it is because they fear that other banks are in that position and that this could trigger the Big Crunch. Or they just think that other banks think that way. Prudence is a much-needed virtue in banking, the more so because it has been forgotten in recent years.
거대은행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여전히 그들이 알리고 싶지 않은 부채로 인해 취약한 재무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그들이 타은행들이 그러한 상태에 있어서 거대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고 걱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는 그들이 타은행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잊혀진 듯 했지만 신중함은 은행업에서 가장 필요한 미덕이다.
But the further cash injection will not provide the permanent solution: the return of interbank lending. For that to happen, banks need to be reassured about each other. Recapitalisation is the only solution. Three big banks – Citibank, UBS and Morgan Stanley – have shown the way in recent days. They remind us that large losses must be financed by fresh share issuance. It matters little who provides the cash. We should not let concerns about sovereign wealth funds stand in the way of a permanent solution.
그러나 은행간 대출의 귀환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것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은행들이 서로간에 재보증해야 한다. 자본 재구성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세 거대은행 – 시티은행, UBS, 모건 스탠리 – 들은 최근에 그렇게 하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은 거대한 손실은 신주발행으로 재무개선을 이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누가 자금을 공급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국부펀드가 해결책을 제공하는 당사자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Obviously, shareholders do not like the dilution of their stakes, but this is what shareholding is all about. If a company has suffered, or is about to suffer, heavy losses, its shareholders will have to bear part of the trouble. Delaying tactics prolong the misery without solving the problem, which will not go away.
명백히 주주들은 그들의 주식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은 주주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마땅한 책임이다. 만약 회사가 거대한 손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그럴 것 같다면 주주들은 문제를 나누어 떠맡아야 한다. 해결책을 늦추는 것은 사라지지 않을 문제의 해결 없이 고통을 연장할 뿐이다.
We now see that the willingness of central banks to provide liquidity at reasonably low cost is only allowing shareholders to delay the time of reckoning. There is no reason for allowing this to go on and on. Delaying tactics are, after all, what led to Japan’s lost decade, after some of the world biggest banks had suffered large losses and their shareholders rested on the authorities’ support to delay the inevitable. The inevitable eventually occurred, but meanwhile the cost to the Japanese economy was gigantic. This is a mistake that should not be repeated.
우리는 꽤 낮은 비용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앙은행들의 의도가 오직 주주들의 최후심판을 늦춰주는 것을 보고 있다. 이렇게 계속 하는 것을 용인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쨌든 해결책을 늦추는 것은 일본을 잃어버린 십 년으로 이끌었던 것 처럼 몇몇 대형은행들이 거대한 손실로 고통을 겪는 동안 그들의 주주들은 관계당국의 지원아래 필연적인 결말을 연장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결말은 발생했고 일본경제는 거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것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실수이다.
Much like in Japan then, today’s banks free-ride on the fear of a recession. They calculate that the central banks will not toughen up when credit is scarce and uncertainty huge. The central banks were right to provide banks with some breathing space, but they also have the right to ask what use has been made of this facility. With few exceptions, the answer is very little or nothing. The message must now go out: unless banks take up their losses and raise the required amount of capital, there will be no more liquidity.
일본과 다르게 오늘날 은행들은 경기침체의 공포에서 자유롭다. 그들은 신용이 부족하거나 불확실성이 커질 때 중앙은행들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지 않고자 함을 알고 있다. 중앙은행은 은행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그들은 또한 이런 편의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질문할 권리가 있다. 이에 대해 그들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조금 답변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이 말은 반드시 지금 전해져야 한다. 은행이 그들의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요구 자본을 늘려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의 유동성 공급은 안 된다.
It is currently far too cheap for banks to sit on cash, so the central banks must make it clear that, once the end-of-the-year settlements are passed, they will let the interbank market rates rise and rise, as high as needed to provide banks with the incentive to relinquish the vast amounts of liquidity amassed over the past few months. In short, they should call the banks’ bluff.
현재 은행들은 싼 값에 돈방석에 않아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연말정산이 끝나면 그들은 은행간 시장의 이자율이 오르도록 할 것이고 지난 몇 달 동안 쌓아 둔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 내도록 유인책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겠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은행의 허세를 요구해야 한다.
If you think back to what has happened, the picture becomes clear. Central banks have kept interest rates very low for many years. This has led many banks to seek juicy returns – to protect shareholder value, as they say – by taking unreasonable risks. This has also led to huge foreign exchange reserves accumulation all over the world. The great unwinding must now take place.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림은 명확해 진다. 중앙은행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는 많은 은행들을 터무니 없는 위험을 수반하면서 달콤한 수익 – 그들이 말하는 바로는 주주의 가치를 보호하는 - 을 얻게 만들었다. 또한 거대한 외환 준비금을 전세계에 쌓아 올리도록 했다. 거대한 유동성 과잉은 반드시 자리를 잡아야 한다.
Risky behaviour eventually means that losses occur here and there. The losses merely make up for huge past returns. For the interbank market to be revived, these losses must now be accepted. Fortunately, the cash that found its way into excess foreign exchange reserves is now available in the form of sovereign wealth funds. The circle can be closed.
결국 무모한 행동은 손실이 여기 저기에서 발생할 것임을 뜻한다. 손실은 거대하다. 은행간 시장이 되살아 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손실을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다행히 초과 외환 준비금으로 흘려 들어간 현금은 이제 국부펀드로 사용될 수 있다. 악순환은 끝날 수 있다.
Financial protectionists will display outrage. It is never pleasant to see newcomers acquire significant shares of our biggest companies, but we must also accept that the era of easy money was a mistake. The fundamental basis of capitalism is that mistakes must be borne. Here we are. But please, bring this misery to its end.
재무 보호주의자들은 격분을 표출할 것이다. 새로운 시장 참여자가 우리 우량 기업의 상당한 주식을 매입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우리는 간편대출의 시대가 실수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본주의의 기초는 실수는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 있다. 하지만 제발 이러한 고통을 끝내자.
The writer is professor of economics at the Graduate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in Geneva
Copyright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07
2007. 12. 28.
번역: End of easy cash: banks must take losses[FT]
2007. 12. 22.
온건 애국주의를 지키지 위해-나타산
온건애국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국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어떤 애국심이냐에 따라 그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다. 악의 없는 애국주의로서 온건 애국주의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애국주의는 미덕인가
환경의 유사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애국주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타국의 이익을 해치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있는가? 톨스토이는 애국주의의 결말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애국주의를 자국의 이익만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애국주의는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공격하여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애국주의는 악이다. 또한 톨스토이는 자국이 타국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세계애에 반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애국주의는 자국민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도덕적으로 제한된 애국주의
자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애국주의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애국주의가 부도덕하지 않았고 부도덕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정당성과 타국에 대한 관심을 막았다면 부도덕 한 것이다. 나의 가족애가 타가족을 해치지 않으면 미덕이 될 수 있다. 애국주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1. 가치있는 결말. 2. 도덕적인 적법성. 대부분 사람들은 온건한 애국주의자다.
-맥킨타이어의 온건 애국주의에 대한 공격
세계주의자는 애국주의자를 자신과 관계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다고 공격하며, 애국주의자는 세계주의자를 대책없이 관심만 갖는다고 공격한다. 둘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맥킨타이어의 주장
애국주의의 범위를 축소하면 엄격한 도덕률과 갈등을 겪으며 정치슬로건화 된다. 반론: 순수한 애국심은 국제적 도덕주의가 국가에 헌신하기를 거부할 때만 갈등을 겪는다.
-자원을 둘러싼 갈등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 1)자원의 희소성 2)한 민족만이 살아남아야 할 때.
위와 같은 상황에서 온건한 애국심은 남아나지 않는다. 애국주의자는 자국의 생존만을 주장할 것이다. 온건주의자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따진 뒤 가장 가치있는 것이 남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국가가 자국의 희생을 택하겠는가? 온건 애국주의는 극단적 애국주의와 달리 방어적이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유감을 갖는다. 국단적 애국주의는 무조건 공격하며 어떤 도덕적 후회도 하지 않는다. 온건파는 절충안을 찾는다. 국제주의적 도덕과 자국에 대한 충성은 조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평무사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분으로서 충실하는 것이 전체에게 공평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삶을 위한 경쟁
맥킨타이어는 온건파가 전세계적인 이익을 위해 자국을 희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극단적 애국주의와 충돌한다고 주장. 반론: 온건주의는 자기방어에 한해 전쟁을 허용한다. 다만 호전적이지 않으며 평화를 추구한다. 방어전쟁은 온건파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보존을 위해 노력한 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단적 애국주의자가 말하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한 행동은 어떤 도덕적 판단도 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온건파는 부정한다.
-중립성과 도덕적 회의주의
세계주의와 극단적 애국주의의 대립. 온건파는 가운데서 우유부단한 것인가? 세계주의자의 도덕기준을 따른다. 즉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국과 타국을 동등하게만 보는 것은 아니고 무조건 자국에 봉사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는 기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종교적 자유 같은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자국이든 타국이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 온건적 애국주의의 기준은 기본권보장이다. 온건적 애국주의자는 세계주의자와는 다르게 자신이 기반한 사회에 바탕을 두고 논리를 전개한다.
-자국에 대한 열정과 무관심
세계주의자는 어느사회에서도 통하는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맥킨타이어는 도덕적 행위는 특정사회의 성립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다.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로 특정사회에서 생성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와 도덕은 분리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어느 사회에도 소속되지 않는 도덕심은 없다. 반론: 도덕의 범위는 열려있다. 가치, 사상, 원리 등 가장 적합한 것을 추구하여 도덕은 변화한다. 사회내에서 도덕가치도 여러 가치의 경쟁을 통해 생성된다. 그렇다면 도덕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도덕관념을 습득한다하여도 그것이 국가전체의 도덕관념이 될 수는 없다. 지역, 가족 등 소소한 차이에 의해 국가내 구성원의 도덕관념은 다를 수 있다. 즉 애국주의가 도덕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애국주의 자체가 도덕률이라면 그것은 개인, 가족, 지역의 가치들과 경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세계주의적 도덕관념도 각 국가의 도덕률과 경쟁하여 생성될 수 있다.
-자국을 위한 죽음
자국에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온건주의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다. 라고 맥킨타이어는 주장한다. 반론: 우선 도덕이 애국주의보다 강하다라는 전제를 주장한다. 전쟁은 지나친 애국주의로 인해 발생했다. 애국주의에 의한 전쟁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애국주의는 도덕적인 성찰을 마비시켰다. 어떤 것도 자신의 도덕적 판단과 비판적 생각을 막아서는 안된다.
결론
온건애국주의는 세계도덕주의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혼합시킬 수 있다. 애국적 요구는 제한되어야 한다. 애국주의를 도덕적 제한 없이 수용하는 것은 애국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애국주의는 인종차별주의와 같다- 곰버그(나타산의 온건애국주의에 대한 비판)
온건주의는 비애국적인 세계도덕주의와 세계주의자가 지지할 수 없는 극단적 애국주의를 회피할 수 있다는 주장. 이것은 실패했다. 애국주의는 인종주의와 다르지 않다.
나타산은 온건주의가 자국을 선호하지만 도덕적으로 제한되며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
타국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세계주의. 네이웃을 네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누가 이웃인가?
타국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자국을 선호하는 것과 조화로울 수 없다. 맥킨타이어는 애국주의와 세계주의는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 나타산은 온건주의자는 둘과 다르다고 생각.
나타산이 둘 사이의 타협점을 찾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회피할 수 없을 경우) 자국을 옹호한다고 이야기함. 현실적으로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에서 특정국민이 자국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피할 수없다면 자국을 옹호한다는 주장은 침공도 허용하는 것인가?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 차이는 자국의 가치와 피해를 막아야 할 경우 자국을 선호한다는 것. 자국의 가치를 위해서라는 조건은 자국 우선주의이다.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온건주의는 국제적 도덕주의를 인정하지만 그것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애매하다. 나타산은 최소한의 권리는 지켜야 한다고 주장. 인종주의는 최소한의 원리를 인정하면서 자국의 가치를 지키기위해 타인종 문화를 배척할 수 있다. 자신이 자국민만을 고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자신의 집단과 타인의 집단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타인을 불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타국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지 못하다. 민족적인 편애주의는 세계주의와 연관될 수 없다. 자국제품선호. 갈등상황에서 온건한 애국주의의 자국선호와 맹목적인 애국주의가 구별될 수 있는가? 자국에 대한 이익추구가 세계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허용해야하는가? 소수민족주의. 현실적으로 실패. 인권을 위해 애국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 불가능함.
민족주의, 애국주의와 결투를 벌여 얻어낸 국제주의만이 유효하다.
Overview: Year-end rally belies concern over credit outlook[FT] 번역
Overview: Year-end rally belies concern over credit outlook
연말 랠리는 신용전망에 대한 걱정과 모순된다.
By Dave Shellock
Published: December 21 2007 20:10 Last updated: December 21 2007 20:10
Global equities ended the last full trading week of the year with a flourish, helped by reports that yet another leading US bank had secured investment from overseas to shore up its balance sheet.
이번 주 국제 증권시장은 올해 중 가장 많은 거래량을 기록하며 마감하였습니다. 이는 해외 투자가들이 미국의 주요은행에 긴급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발표 때문입니다.
But the underlying mood remained cautious amid persistent anxiety about the credit outlook, in spite of massive injections of liquidity into the money markets by the world’s central banks.
그러나 잠재적인 분위기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신용위기에 대해 불안함이 지속되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The European Central Bank stunned investors by pumping in 유로348bn ($500bn) in its two-week operation – twice the amount it had estimated would be needed – and there was strong demand at both of the Federal Reserve’s auctions of term funds.
유럽중앙은행은 유로348bn를 이 주 동안 공급하겠다고 하여 투자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위 금액은 시장에 필요하다고 예상되었던 것보다 두 배나 많습니다. 여기에는 연준의 단기 자금 기금(?)의 강력한 요구도 반영된 것입니다.
“Central bank action in the past few days has eased year-end funding pressures somewhat, helping money market rates to drop from their elevated levels,” said Ben Bennett, credit strategist at Lehman Brothers.
리만 브로더스의 신용전략가인 벤 베넷은 “지난 몇 일간 이뤄진 중앙은행의 활동은 연말 자금 압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단기 자금 이자율을 낮춰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Despite this year-end easing, however, it is not clear how much conditions will improve going into 2008.”
“올 연말이 순조롭게 지나가더라도 2008년으로 접어들면서 얼마나 많은 조건이 개선 될 지는 확실하지 않다.”
Lena Komileva, economist at Tullett Prebon, said Libor rates would continue to decline in January, due to “year-end” effects dropping out and the recent central bank injections. But she warned: “Year-end psychology is likely to be replaced by a renewed focus on longer-term real and structural risks to the G7 and the global economy.”
툴렛 프레본의 이코노미스트인 레나 코밀레바는 리보 금리가 중앙은행의 자금공급과 연말효과로 인해 일월까지는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연말 심리는 G7과 세계경제에 대한 장기적인 실질 구조 위험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The three-month euro Libor rate was fixed at 4.78 per cent on Friday, down 17 basis points over the week. Three-month sterling fell even more sharply as the market ratcheted up the odds of the Bank of England cutting official rates again soon.
금요일 유로 리보 3개월 금리는 4.78%이었고, 주간 17 bp하락하였다. 3개월 파운드는 영국은행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로 급격히 하락했다.
But widespread expectations that US borrowing costs would continue to be cut going into 2008 were challenged by strong spending and inflation figures for November.
그러나 미국 대출 비용이 2008년까지는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는 과도한 지출과 11월 인플레이션 지수로 인해 문제되고 있다.
“Personal spending came in well above expectations, up 1.1 per cent on the month, and on a real basis it was up 0.5 per cent,” said Adam York, economic analyst at Wachovia Bank. “The bad news contained in this report is the core PCE deflator, the Fed’s preferred measure of inflation, is now up 2.2 per cent year over year [above the Fed’s perceived ‘comfort zone’]. This does not preclude a rate cut in January, but it makes the case for one harder.”
“개인 소비는 1.1%상승하여 기대 이상으로 나타났고 실질지수로도 0.5% 상승했다.”와쵸비아 은행의 경제분석가인 아담 요크가 말했다. “이 정보가 가지고 있는 안 좋은 뉴스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측정 시 선호하는 순 소비지출 지수가 연간 2.2%상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준이 생각하는 안전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1월에 이뤄질 금리인하를 막지는 못할 것이지만 힘들어지는 요인은 될 것이다.
Rob Carnell at ING said: “This may help the dollar in the short run, but trouble equity markets, which are looking for further easing to help repair the credit problems weighing on the economy. Bond markets will doubtless see no good news in these figures.”
ING의 롭 카넬은 “유동성 지원이 단기에는 달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경제에 부담이 되는 신용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주식시장에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채권시장에는 분명히 좋지 않은 뉴스이다."라고 말했다.
However, the mood in equity markets was resoundingly bullish on Friday as investors welcomed reports that Merrill Lynch might get up to $5bn in a capital infusion from Temasek, Singapore’s state investor. A deal would mark the fourth time in a month that a leading bank had raised capital from a sovereign wealth fund.
그러나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메릴린치가 테마섹(싱카폴 국부펀드)으로부터 $5bn의 자본투입을 받기로 한 것에 투자자들이 반응하여 금요일에는 강세를 이어갔다. 테마섹의 지원은 국부펀드가 대형은행을 지원하는 네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That helped offset a $1.9bn writedown by Bear Stearns on its mortgage inventory earlier in the week, as well as fears that bond insurers could be close to losing their all-import!ant triple-A credit ratings.
이번 주초 베어스턴스가 모기지 부실로 $1.9bn 손실을 기록하여 채권보증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AAA등급채에서도 손실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가 퍼졌다. 자금지원은 이를 상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By midday on Friday, the S&P 500 index was up 1.1 per cent, and was 0.6 per cent higher on the week. In Europe, the FTSE Eurofirst 300 index rose 1.4 per cent, but was down 2 per cent over the five-day period. In Japan, the Nikkei 225 Average fell 1.7 per cent over the week.
금요일 정오에 에스엔피 500 지수는 1.1% 상승해서 주초보다 0.6%오른채 마감했다. 유럽에서는 풋츠 유로퍼스트 300 지수가 하루 동안 1.4% 상승했지만 이번 주에는 2%하락했다. 일본에서는 니케이 225 평균이 주간 1.7%하락했다.
Government bond prices eased back on Friday but recorded solid gains over the week as equity volatility triggered fresh safe-haven buying. The yield on the 10-year US Treasury eased 12 basis points over the week to 4.11 per cent, while the two-year yield fell 12bp to 3.18 per cent. The yield on the 10-year UK gilt tumbled 17bp to 4.69 per cent as expectations of further UK interest rate cuts were bolstered by benign inflation figures.
국채가격은 금요일에는 하락했지만 이번 주 동안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를 유발하여 순수익을 이어갔다. 10년만기 미국채의 수익률은 주간 12bp상승하여 4.11%를 나타냈고 2년만기 수익률은 12bp하락하여 3.18%를 나타냈다. 10년만기 영국채 수익률은 순조로운 인플레이션 지수로 인해 이자율 하락에 대한 기대가 더해져 17bp하락한 4.69%를 나타냈다.
On the currency markets, mounting expectations of further UK interest rate cuts drove sterling to a four-month low against the dollar and its lowest-ever level against the euro. The dollar touched a six-week high against the yen as Friday’s equity rally encouraged investors to take fresh positions in risky carry trades.
통화시장에서는 영국의 금리하락에 대한 기대가 상승하여 파운드가 미 달러 대비 4개월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유로화대비 역대 최저수준을 나타냈다. 달러화는 주식시장의 랠리가 캐리트래이드를 유지하도록 하여 엔화 대비 육주 고점을 찍었다.
In commodities, oil prices pushed higher over the week following news of a sharp fall in US crude inventories. February West Texas Intermediate was nearing $93 a barrel, up from $91.27 at the end of the previous week. Platinum traded near its record high at $1,516 an ounce while gold recovered the $800 level.
상품시장에서는 유가가 미국 원유재고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뉴스로 인해 상승하였다. 서부텍사스유 2월 물은 지난주 베럴 당 $91.27에서 $93에 근접했다. 백금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온스당 $1,516에 거래되었고 금은 $800수준을 회복하였다.
2007. 12. 4.
자기소개서
저는 4년 서울보증보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때 차장님께서는 금융인으로서 일 처리는 정확히, 과정은 정직하게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직원분들이 차장님 말씀대로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실수 없이 양심에 따라 처리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저는 금융인이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은 문서에 들어가는 숫자 하나에 세세히 신경 쓰셨습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잘 못 기재되면 회사와 고객님에게 피해가 간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부서에는 소액 채무자들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그분들이 직원분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길 원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는 한가지 철칙이 있었습니다. 고객에게 개인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업무를 처리할 때 사심이 들어가게 되면 부정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분이 이러한 규정을 지키며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 때의 경험으로 꼼꼼한 일처리와 정직함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금융인이 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한 것은 군입대 전부터 입니다. 당시 신문에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업무간 장벽을 철폐해 거대한 투자은행이 탄생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경제성장 동력이 될 분야가 금융산업이기 때문에 거대한 투자은행이 필요한 것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금융산업에 들어가 그곳에서 일을 해보자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군입대 후 목표를 금융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삼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했습니다. 전문지식과 현실감각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준비하고 경제신문을 꾸준히 구독하기로 했습니다. 군대에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자격증 준비를 하여 증권투자상담사와 선물거래상담사를 취득하였습니다. 또한 매일 경제신문을 읽으며 경제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선물환, NDF, 투기거래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며 금융지식을 현실과 접목시기게 되었습니다.
금융에 관심을 갖게 될수록 어떤 인물이 금융업에 종사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궁금증을 풀기위해 금융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조지소로스, 피터린치, jp 모건 등 수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지 소로스에게서는 금융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금융업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피터린치에게서는 금융업은 단순히 금융에 대한 지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 철학, 사회학 등 여러분야에 대한 넓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금융제국이 된 JP모건을 통해 금융업의 영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금융업에 대한 저의 열정을 키워주었습니다.군 제대 후 첫 학기인 지금, 저는 금융업과 관련된 과목을 들으며 전문적인 금융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 금융시장은 전세계 자금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이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복잡한 금융상품이 만들어 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물회사는 첨단금융상품을 일선에서 거래하는 곳입니다. 어느 때보다 금융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선물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이 주어진다면 미약하지만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하는 저의 지식과 강열한 열정을 모두 투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저의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정치는 현실이다 - 웨스트 윙. 에피소드 15. 천문항법
이번 에피소드는 인종문제를 다룬다. 대통령이 백악관을 비운 사이 비서진들은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흑인 여성인 도시개발부 장관 오리어리는 공화당 위원장의 도발에 냉정함을 잃고 그를 인종주의자라고 비난한다.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지명한 라틴계 미국인 멘도자는 음주측정을 하려는 경찰이 인종차별을 하였다는 이유로 측정을 거부하여 감옥에 갇힌다. 샘과 토비는 멘도자를 석방시키기 위해 코네티컷으로 향한다. 한편 조쉬는 오리어리가 사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던 중 인플레이션 비밀대책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백악관 비서진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무거운 주제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서진들이 좌충우돌 하는 모습은 재미있다. 시청자가 화려한 백악관을 동경했다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모습에 실망할지 모르겠다.
인종문제는 미국드라마의 단골메뉴다. 드라마에는 흑인이나 동양인, 히스패닉이 인종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상황이 나온다. 이는 아직도 미국에 소수인종 차별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인종문제를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멘도자판사역을 맡은 올모스는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는 대배우다. 그는 단역인 멘도자역을 맡기 위해 제작진에게 직접 연락했다고 한다. 소수인종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된다. 정치드라마인 웨스트윙이 인종문제를 다루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당사자들은 조심스러웠을 거다. 드라마는 숫자상으로는 균형을 지키는 듯 하다. 오리어리는 공화당 위원장에게 사과했고, 멘도자는 경찰에게 사과를 받았다. 사실 오리어리사건은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기에 비서진이 사과를 시킨 것이고 멘도자사건은 정치적인 쟁점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사과를 받아낸 것이다. 웨스트윙들에게 모든 해결책의 목표는 대통령에게 최선이 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이상적이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위를 둘러보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정치란 것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Carpe diem
“Oh, captain, my captain.” 키팅선생님이 학교를 떠날 때 학생들은 책상위로 올라가 그를 향해 외쳤다. 키팅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미소를 띄우며 “Thank you, boys. Thank you.” 라고 말하고 학교를 나섰다. 주입식 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게 인간애와 자유로운 정신을 일깨워 주었던 키팅선생님. 그는 학부모와 교장선생님과는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학생에게는 참스승 이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나의 현실을 돌아보고 분노했으며, 학생들이 책상을 밟고 서는 모습에서 환희를 느꼈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적에 이해찬씨가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여러 가지 말 중에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야간자율학습 폐지였다. 밤10시 이전에는 집에 보내주지 않기로 유명했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나로서는 쾌재를 부를만한 일이었다.
나의 기대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무너졌다. TV 뉴스에 나온 것과는 다르게 야간자율학습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의 동의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오지 못하면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하시겠다고 하였다. 부모님은 나의 예상대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명해 주셨다. 아침 7시 30분 등교, 밤 10시 하교의 지루한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입학 후 한달 간 나는 감옥 같은 학교를 잘 다녔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고 그저 잘 갔다 잘 왔다는 거다. 하지만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전날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감명 깊게 본 내가 당당히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 범행이었다. 월요일 저녁 급식을 먹고 나는 학교 담장을 넘었다. 학교를 나와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교실에서 학생을 단번에 개조시킨다는 새마을 펀치로 유명한 선생님께 정신을 못 차리도록 맞았다. 순간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던 아픔이 아직도 남아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누군가가 교육청 홈페이지에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것을 신고했다. 당장 타율적인 자율학습은 못하게 되었고, 하고 싶은 사람만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자율학습을 하게 되었다. 다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문제집, 교과서였고 소설책이나 신문을 읽다 감독 선생님에게 걸리게 되면 그것들을 압수당했다. 나는 당연히 학교에 남지 않았다.
일년 뒤, 친구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공부해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알아서 학교에 남았고, 나는 혼자 학교를 나섰다. 학교에 남지 않은 학생은 나와 운동부뿐이었다. 일찍 나온 학교 밖은 심심했다. 처음엔 오락실에 갔고, 그 다음엔 게임방에 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시립도서관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교과서에는 중략되어있는 소설을 찾아 읽었고, 신문을 완독했다. 성적은 반에서 중간도 안되었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진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집을 푸느니 책을 읽고 내가 느끼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했다. 지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학교처럼 반항할 것이라고 있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다. 아니 그런 것이 있다 해도 지금 나에게는 열정이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 취업이 코앞이라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래야 내가 지금 즐거울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 속 아이들 중 한 명이 연극을 하기 위해 학교를 뛰쳐 나갔던 것처럼 나는 열정을 갖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키팅선생님이 죽은 사람들의 사진에 귀를 대면 들린다던 가장 중요한 그 말 “carpe diem”-현실을 즐겨라-을 나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3년 전이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는 1시간 30분 전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갈 때 평소와는 다르게 도로가 차들로 꽉 차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정체는 풀리지 않았다. 멀리에 전경들이 타고 다니는 닭장차가 보였다. ‘이런 또 시위하는 구나.’ 버스를 타게 되면, 그 버스가 종로를 지나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봐야 한다. 종로를 지나가는 길은 출퇴근 시간에 길이 막히기도 하지만 대낮에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여 교통혼란이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낮이라고 버스를 탄 내가 잘못이었다. 버스가 오도가도 못하는 길에 시위대의 깃발이 지나갔다. ‘왜 하필 오늘이야.’ 당장 창문 밖으로 욕을 내뱉고 싶었다. 저녁 뉴스를 보니 시위에 관한 뉴스가 나왔다. 뉴스내용은 이런저런 단체의 시위로 도로가 정체되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시위를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단 시위로 인해 길이 막히면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게다가 지하철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때로는 폭력적인 시위로 인해 시위현장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경찰에게 잡혀갈 수 있다. 이런 경우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질서나 타인의 자유보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논란도 이러한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로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시위로 인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확대될 수 있다.
개인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자신의 의사대로 자신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밥을 먹고, 거리를 지나가고 싶을 때 지나갈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도 침해 할 수가 없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권리이다.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권리를 가진 개인이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국가를 세웠다는 주장이 타당하다면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국가의 설립에 대한 기본 이념은 개인의 권리 보장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위 주장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목적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한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국가가 권력을 개인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적인 행위이다. 개인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동의 하에 생성된 것이 국가이므로 국가는 개인의 동의가 없는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조직되어 있을 때 국가는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처음은 신입생 시절 메이데이 노동자 투쟁이었고 그 다음은 미선이 효순이 사건, 가장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에 처음 참여하게 된 것은 학과에서 선배들과 함께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어울리고 싶어 참여한 것이었다. 도로를 점거하고 우리 깃발을 따라 걸었던 추억은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우리 시위대 때문에 길이 막혀 고생했을 시민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든다. 시위는 참가하기 전 세미나에서 보았던 폭력진압비디오와는 다르게 평화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내가 참여한 시위 중 공권력을 느꼈던 것은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었다. 나는 시위를 시작하고서부터 끝날 때까지 정신차리지 않으면 재수없게 경찰서에 끌려갈 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꼈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시청역에서 내려 교보문고 앞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지하철은 시청역에서 멈추지 않았다. 경찰 측에서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물론 한 정거장을 지나서 내려도 시위하는 장소까지 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지하철의 정차구간을 마음대로 조정한 것은 시민들의 이동권을 제한한 것이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그곳에 볼일이 있어 가고자 했던 시민은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된 것이 아닌가.
시위 장소에 들어서자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래는 시위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광야에서였다. 비교적 전투적이지 않은 노래라 그 자리에 참여한 시민들이 따라 부르기에는 적당했다. 촛불을 들고 앞으로 나서는데 사람들이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약 100미터 앞에 닭장차들이 보였다. 역시 경찰은 전경을 앞세워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사건의 당사자가 미군이었기 때문에 미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미국 대사관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시위를 막고 있었다.
시위대 앞쪽에는 시위에 가면 항상 보이는 민주노총 점퍼를 입은 아저씨들이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앞쪽에 나서게 되어 아저씨들과 함께 전경을 앞에 두고 몸을 부딪히게 되었다. “앞으로 갑시다.” “어린 놈이 집에 가라.” 전경의 유치한 말장난에 열이 받은 나는 끝까지 버텼다. 전경은 시위대가 점차 늘어나자 뒤로 후퇴하였다. 우리 앞에는 차로 막아 놓은 바리케이드만 있었다. 경찰은 버스 위에서 버스로 올라가려는 열혈시위자들만 잡고 있었다. 순간 ‘나도 올라갈까?’ 하다가 올라갔다가는 경찰서에 잡혀가게 될 것이므로 부모님께 죄송스런 일을 벌이지 않기 위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시위에 참여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엄연히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위에 참여하려는 시민이 집회장소에 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 또한 집회장소를 제한하였다. 게다가 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하여 시위를 제제하였다. 이는 개인의 권리를 공권력이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일각에서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개인이 시위로 인해 이동권이 제한되고, 전경들이 시위자의 폭력으로 부상을 입을 수 있으며, 시위대에 참여하지 않은 개인도 시위장소에 있었다는 것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아 시위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이다.
내가 참여한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한 경우는 경찰이 과도하게 시위를 제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찰이 시위할 수 있는 장소를 규제하지 않는 다면 시위대는 평화로운 행진을 했을 것이다. 만약 시위대가 미국대사관을 뛰어넘어가 유리창을 깨부순다던 지 직원을 폭행한다면 이는 사후적으로 처벌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경찰은 사전에 시위대를 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일정 장소를 벗어날 경우 처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위대는 바로 앞에 놓인 경찰들과 대치하여 경찰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으로서 시위에 참여하는 시위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국가의 권력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함으로 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리를 국가는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권리를 국가가 제제 했을 때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개인은 자신의 권리 역시 국가의 권력 앞에 부당하게 제제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당한 권력집행을 보고도 국가가 아닌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리도 부당한 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다만 시위에 참여하는 개인이 타인에 대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이 경우는 엄연히 국가의 제제가 있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이 시위를 하기 까지는 개인의 의사가 소수에 속하여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가 많다. 한미 FTA 반대시위 당시 농민들은 자신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자신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거리에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모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할 때 개인의 의견을 공평하게 반영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러고서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정부의 제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어떤 시위는 불법시위로 규정되어 시위대가 경찰의 물리력에 의해 해산되기도 하고, 다른 시위는 경찰의 보호아래 평화적인 시위로 마무리 되기도 한다. 개인의 권리가 국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제제될 수 있다는 것이 현실태인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때에만 정당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에 머물러야 하며 불가피하게 제제하게 되었을 경우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 경찰이 집회장소를 제한하고, 시위자들을 임의적인 폭력집단으로 규정하여 시위의 참여를 막고, 집회를 강제로 해산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한 집회금지행위를 그만 두어야 한다. 또한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개인은 시위대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집회참여자들은 참여하지 않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롤스의 정의론
롤스의 정의론
- 롤스의 「정의론」은
·계몽주의적 자유주의 전통을 혁신
·현실세계의 실질적 논쟁(ex.부의분배)과 관련된 정치원리를 논의하기 위한 틀을 제공
*현재 상황에서 정치철학의 핵심물음은 어떤 정치적 이상이든 그 이상이 문화·사회적 정체성, 도덕적·종교적 신조 등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이다.
① 자유주의 전통의 혁신
-자유주의는 정치적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승인할 수 있도록 정치적 권위가 정당화 되어야 한다. 현실적인 동의가 합법성의 필요조건인 한 국가의 권위가 항상 합법적일 수 있는지 문제제기 될 수 있다.
-롤스는 가상적 동의모델을 사용하였다. 시민들이 동의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 공정한 선택의 조건하에서 국가의 권위를 가상적으로 수용하고 결과적으로 그 권리의 원리를 따르게 된다면 국가의 권위는 정당하다.
②롤스의 가상적 동의모델
1)롤스의 가상적 조건과 정의론 : 롤스의 가상적 조건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무관심한 관점이며, 이 때 선택한 것이 정의이다.
2)가상적 선택이 일어나는 조건 :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
롤스는 원초적 입장을 가정한다.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지 못 한다. 이로 인해 당사자는 무지의 베일에 가려지는데 무지의 베일은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수용된 정의 원리에 제약을 받지 않고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결정과정에서 대등하게 힘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롤스는 이 때 당사자들이 선택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3)정의의 원칙
1. 제 1원칙(자유의 원칙):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광범위한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2. 제 2원칙(기회균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단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허용된다.
⑴ 불평등이 공정한 기회균등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지위와 직책에 결부되어야 한다.(기회균등의 원칙)
⑵ 불평등이 사회의 최소수혜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차등의 원칙)
* 최소수혜자란? 선천적으로 지닌 자질이 적은 사람 ex.장애인
* 우선순위: 자유의 원칙> 기회균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