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는 1시간 30분 전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갈 때 평소와는 다르게 도로가 차들로 꽉 차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정체는 풀리지 않았다. 멀리에 전경들이 타고 다니는 닭장차가 보였다. ‘이런 또 시위하는 구나.’ 버스를 타게 되면, 그 버스가 종로를 지나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봐야 한다. 종로를 지나가는 길은 출퇴근 시간에 길이 막히기도 하지만 대낮에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여 교통혼란이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낮이라고 버스를 탄 내가 잘못이었다. 버스가 오도가도 못하는 길에 시위대의 깃발이 지나갔다. ‘왜 하필 오늘이야.’ 당장 창문 밖으로 욕을 내뱉고 싶었다. 저녁 뉴스를 보니 시위에 관한 뉴스가 나왔다. 뉴스내용은 이런저런 단체의 시위로 도로가 정체되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시위를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단 시위로 인해 길이 막히면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게다가 지하철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때로는 폭력적인 시위로 인해 시위현장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경찰에게 잡혀갈 수 있다. 이런 경우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질서나 타인의 자유보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논란도 이러한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로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시위로 인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확대될 수 있다.
개인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자신의 의사대로 자신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밥을 먹고, 거리를 지나가고 싶을 때 지나갈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도 침해 할 수가 없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한 권리이다.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권리를 가진 개인이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국가를 세웠다는 주장이 타당하다면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국가의 설립에 대한 기본 이념은 개인의 권리 보장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위 주장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목적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한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국가가 권력을 개인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적인 행위이다. 개인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동의 하에 생성된 것이 국가이므로 국가는 개인의 동의가 없는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조직되어 있을 때 국가는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처음은 신입생 시절 메이데이 노동자 투쟁이었고 그 다음은 미선이 효순이 사건, 가장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에 처음 참여하게 된 것은 학과에서 선배들과 함께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어울리고 싶어 참여한 것이었다. 도로를 점거하고 우리 깃발을 따라 걸었던 추억은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우리 시위대 때문에 길이 막혀 고생했을 시민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든다. 시위는 참가하기 전 세미나에서 보았던 폭력진압비디오와는 다르게 평화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내가 참여한 시위 중 공권력을 느꼈던 것은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었다. 나는 시위를 시작하고서부터 끝날 때까지 정신차리지 않으면 재수없게 경찰서에 끌려갈 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꼈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시청역에서 내려 교보문고 앞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지하철은 시청역에서 멈추지 않았다. 경찰 측에서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물론 한 정거장을 지나서 내려도 시위하는 장소까지 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지하철의 정차구간을 마음대로 조정한 것은 시민들의 이동권을 제한한 것이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그곳에 볼일이 있어 가고자 했던 시민은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된 것이 아닌가.
시위 장소에 들어서자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래는 시위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광야에서였다. 비교적 전투적이지 않은 노래라 그 자리에 참여한 시민들이 따라 부르기에는 적당했다. 촛불을 들고 앞으로 나서는데 사람들이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약 100미터 앞에 닭장차들이 보였다. 역시 경찰은 전경을 앞세워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사건의 당사자가 미군이었기 때문에 미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미국 대사관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시위를 막고 있었다.
시위대 앞쪽에는 시위에 가면 항상 보이는 민주노총 점퍼를 입은 아저씨들이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앞쪽에 나서게 되어 아저씨들과 함께 전경을 앞에 두고 몸을 부딪히게 되었다. “앞으로 갑시다.” “어린 놈이 집에 가라.” 전경의 유치한 말장난에 열이 받은 나는 끝까지 버텼다. 전경은 시위대가 점차 늘어나자 뒤로 후퇴하였다. 우리 앞에는 차로 막아 놓은 바리케이드만 있었다. 경찰은 버스 위에서 버스로 올라가려는 열혈시위자들만 잡고 있었다. 순간 ‘나도 올라갈까?’ 하다가 올라갔다가는 경찰서에 잡혀가게 될 것이므로 부모님께 죄송스런 일을 벌이지 않기 위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시위에 참여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엄연히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위에 참여하려는 시민이 집회장소에 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 또한 집회장소를 제한하였다. 게다가 시위에 참여한 시민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하여 시위를 제제하였다. 이는 개인의 권리를 공권력이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일각에서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개인이 시위로 인해 이동권이 제한되고, 전경들이 시위자의 폭력으로 부상을 입을 수 있으며, 시위대에 참여하지 않은 개인도 시위장소에 있었다는 것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아 시위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이다.
내가 참여한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한 경우는 경찰이 과도하게 시위를 제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찰이 시위할 수 있는 장소를 규제하지 않는 다면 시위대는 평화로운 행진을 했을 것이다. 만약 시위대가 미국대사관을 뛰어넘어가 유리창을 깨부순다던 지 직원을 폭행한다면 이는 사후적으로 처벌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경찰은 사전에 시위대를 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일정 장소를 벗어날 경우 처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위대는 바로 앞에 놓인 경찰들과 대치하여 경찰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으로서 시위에 참여하는 시위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국가의 권력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함으로 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리를 국가는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권리를 국가가 제제 했을 때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개인은 자신의 권리 역시 국가의 권력 앞에 부당하게 제제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당한 권력집행을 보고도 국가가 아닌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리도 부당한 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다만 시위에 참여하는 개인이 타인에 대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이 경우는 엄연히 국가의 제제가 있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이 시위를 하기 까지는 개인의 의사가 소수에 속하여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가 많다. 한미 FTA 반대시위 당시 농민들은 자신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자신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거리에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모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수립할 때 개인의 의견을 공평하게 반영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러고서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정부의 제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어떤 시위는 불법시위로 규정되어 시위대가 경찰의 물리력에 의해 해산되기도 하고, 다른 시위는 경찰의 보호아래 평화적인 시위로 마무리 되기도 한다. 개인의 권리가 국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제제될 수 있다는 것이 현실태인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할 때에만 정당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에 머물러야 하며 불가피하게 제제하게 되었을 경우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 경찰이 집회장소를 제한하고, 시위자들을 임의적인 폭력집단으로 규정하여 시위의 참여를 막고, 집회를 강제로 해산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한 집회금지행위를 그만 두어야 한다. 또한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개인은 시위대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집회참여자들은 참여하지 않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2007. 12. 4.
집회와 시위의 자유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